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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축사하기 위해 단체장 된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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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19-08-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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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이상문기자] 자치단체장이 하루 소화하는 일정 중 각종 행사 참석이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날에는 분 단위로 쪼개가며 행사에 참석해야 할 정도로 바쁘다. 비서실에는 아예 일정을 조절하는 주무관이 배치될 정도니 단체장 고유의 업무가 무엇인지 혼동이 올 때도 있다.

  또 단체장을 만나러 오는 손님들도 장사진을 친다. 단체장은 손님을 맞이하다가 보면 업무 결재를 미뤄야 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일일이 행사장을 찾아가 축사를 하고 손님을 만나 응대해야 하는 단체장이 업무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제한된다.

  행사를 주최하는 입장에서 보면 단체장이 참석하지 않으면 모양새가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단체장이 행사장에 나타나 축사를 하고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 그 행사는 성공했다고 믿는다. 손님도 마찬가지다. 경천동지할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체장과 약속 잡기를 원하고 비서실에서 일정상의 이유로 거부하거나 미루면 단체장과의 관계를 들먹거리며 화를 내기 일쑤다. 단체장은 그들이 던져주는 표로 당선된 사람이고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다음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어지간하면 행사에 참석하고 일정을 잘게 쪼개 손님을 만난다.

  어떤 단체장은 행사장에 나타나 축사를 하는 것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상석에 앉아 대우 받기를 좋아하고 참석자들이 다가와 허리 굽혀 인사를 할 때 자신의 위치를 새삼 느끼며 만족해  한다. 그 시간 시정을 추진하는 공무원들은 결재판을 만지작거리며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사무실 문 위에 달린 재실등을 쳐다보며 단체장이 귀환하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린다. 그 순간 더위에 지친 소외계층은 관공서의 도움을 기다리며 이리저리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다니고 있고 관광객이 버린 쓰레기로 골목은 더러워지고 있다.

  이제는 제발 어지간한 행사장에는 부시장이나 담당 국·과장을 보내고 축사도 대신하도록 해야 한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 손님맞이도 사양하고 그 시간에 담당 공무원을 대동하고 현장을 누벼야 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은 공직자와 정치인이 금언처럼 여기는 말이다. 단체장이 챙기지 않으면 담당 공무원은 전형적인 복지부동의 자세로 일관한다. 현장을 찾아 확인하고 문제를 찾아내 심각하게 문책을 한다면 우리 공직사회는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시민들도 반성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 아님에도 단체장이 나타나지 않으면 섭섭해 하고 심지어는 공공연하게 비난하기도 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그들만이 단체장을 독점할 수 없다. 단체장은 시민의 공복이며 전체 시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별다른 중요한 메시지도 없는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상찬의 언어만 나열하는 축사를 하기 위해 그 귀한 시간을 낭비하도록 조르지 않아야 한다. 그 시간에 골목을 돌고 교량을 점검하고 소외계청의 주거지를 찾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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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